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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상담센터는 어제의 어려움을 지나 나아가려는 이들과 걷습니다.

내 손에 쥐어진 무기

이국향 2026-05-21 17:42:56 조회수 53

그제 밤, 자다가 문득 깨었을 때 빗소리가 들렸습니다. 작정하고 내리는 비, 의심 없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다시 눈을 감았더랬지요. 그로부터 오늘 아침까지 쉴 새 없이 비가 내립니다.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틀 동안 내렸으니 이 정도면 오랜 가뭄이 해갈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장화를 신고 겉옷을 걸치고 마당으로 나가봅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여기저기 들여다보고 기웃거립니다. 내 꽃들과 나무들 그리고 채소의 안부를 묻습니다. 키 큰 그라스들과 바늘꽃 가우라는 길게 드러누웠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꽃나무도 쓰러져있습니다. 다투어 피어나던 장미들은 잔뜩 상처를 입었고 올라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꽃들은 고개 숙이거나 힘없이 몸져누웠습니다. 며칠 전 막 봉오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던 꽃 들이었는데 오늘 아침 그들의 안녕은 내가 고대했던 바와 퍽 달라져 있습니다. 태양이 내리쬐면 상태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저릿한 안타까움을 덮어봅니다. 쪼그리고 앉아 젖은 상추를 한가득 뜯어냈습니다. 상추조차 비에 입은 상처가 대단한데, 저대로 먹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식물들의 한 살이에서 겪은 어제오늘의 비는 그들에게 어떤 흔적을 남길까요? 잘은 모르지만 잠깐 동안 입은 타격감이 송두리째 그들을 날려버리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속절없이 얻어맞은 뺨은 멍투성이로 얼룩지겠지만 그들의 시간에서는 꼭 필요했던 시련이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들 삶에 늘 해가 나고 살랑거리는 좋은 바람이 불지 않듯 내 마당의 식물들 세상도 그러할 겁니다. 햇살이 비의 흔적을 서서히 지워갈수록 식물은 오히려 더 튼튼해지고 생기 넘칠 것입니다. 빗속에서 얻은 양분이 그들 속에 스며들어 식물은 더 강해지고 더 오래 꽃 피울 것입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닥쳐오는 이런 시간은 나의 내담자들에게서 흐르는 시간과 흡사합니다. 본인의 의도나 계획을 무시하고 인정사정없이 몰아치는 시련도 그러하고 그 역경에 휘청이며 쓰러지는 것도 마찬가지니까요. 다행스럽게도 사정없이 내리는 비에 내상을 입은 내담자들이 가져온 시련의 무늬는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고 그들은 단련되어 갑니다. 그래서 결국 어둡고 검은 옷을 벗어두고 찬란한 햇빛 속으로 걸어가지요.



이렇게 보면 꽃들과 나무들과 우리가 살아가는 이치는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자연 안에 안겨 살아가는 존재이니 그런 것이겠지요. 소나무 씨앗은 소나무로 자라고 호박씨는 호박 덩굴을 키우고, 매콤한 청양고추 보랏빛 옥수수 씨앗은 저마다 숨은 모양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을 보면,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될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느 길에 서 있는 걸까요? 어떤 씨앗을 품고, 어떤 모습으로 우뚝 서기 위해 나는 지금 여기를 지나는 걸까요?



저마다의 씨앗으로 이 세상에 온 우리, 그러나 저마다의 떡잎을 내고 꽃을 피우며 열매 맺고 사라지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어떤 땅에 떨어지는지, 누구의 손에 길러지는지 그 환경에 좌지우지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나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느 순간 우리에게 찾아오는 자의식, 그래서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갈지 적어도 생각할 수 있고 애써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 아닐는지요. 적어도 내 안에 숨은 씨앗을 발견하고 그에 맞게 물과 영양분을 채워갈 수 있는 결정권이 주어진다는 점이 내 손에 쥐어진 비밀 병기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손에 쥔 그 무기를 발견할 수 있는 눈과 제대로 휘두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겠지만요.



개구리 소리가 무성하게 들리더니 어느새 온갖 새소리가 들립니다. 이제 날이 개고 해가 비치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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